김교철선교사 > 선교편지

본문 바로가기
2020년 7월 현재 102개 나라에서 1,415가정 2,554명의 선교사가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선교편지

김교철선교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지역사역국
댓글 0건 조회 1,746회 작성일 2004-04-09 10:49

본문

朝鮮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중국 山東선교 정책
초기 한국 장로교회의 중국 山東선교 정책

들어가는 말

이번에는 山東선교 역사(1913∼1957) 중 선교정책에 관련된 몇몇 내용을 중심으로 연구된 부분을 나누려고 한다. 초기 한국장로교회는 1913년에 중화민국 山東省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실질적인 타문화권 선교를 시작하였다. 비록 규모면에 있어서는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으나, 그 내용을 연구하면 할수록 배울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타문화권 선교를 시작한 1913년으로 말하자면, 한국이 복음을 받아들인 지 30년도 안된 초창기의 한국 교회에게 있어서, 장로회가 총회를 창립한 지 1년이 경과한 시점이고, 일제의 식민지배가 시작된 지 수년이 경과된 때였다. 국가적으로는 주권을 상실하여 식민지배를 당하던 시기였고, 교회는 아직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던 시기로, 서양선교사들의 영향력이 대단하던 때였다.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제1회로 평양에서 개회되어 임원이 선출되었는데, 회장에 원두우(언더우드) 선교사, 부회장에 길선주가 선출되었다. 언더우드가 초대회장에 선출되었다는 것은 그로서는 대단한 명예에 속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조선장로회 총회가 설립되면서까지 서양선교사가 조선장로회의 총회장이 되었다는 것은, 당시에도 서양선교사의 영향력이 어떠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며, 완전한 자치(自治)로의 이양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1912년 창립총회에서 선교사 파송 청원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1913년에 박태로 목사가 첫 선교사로 지목되어 산동(山東) 선교지를 방문하였고, 1913년 가을 세 명의 선교사와 그 가족이 중국 山東省으로 파견되어 사역하게 되었던 것이다. 초기 3인의 선교사에 이어 방효원, 홍승한, 박상순, 이대영, 김순호(여선교사), 방지일 목사가 山東省으로, 그리고 최혁주 목사가 만주국으로 각각 파송을 받아 사역을 감당하였다. 선교사로 파송된 것은 아니지만, 선교지에서 일했던 의사 김윤식, 주현칙, 안중호와 선교사 자녀학교 교사 조소임, 리영애 그리고 선교회 학교 교사 편순남 등을 들 수 있다. 일제하에서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중화민국 山東省과 만주국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선교사업을 수행하였는데, 본 세미나에서는 만주국 선교는 다음으로 미루고 山東을 중심으로 하여 그 선교정책을 살펴보려고 한다.

'정책'이란 우리가 어떻게 목표를 달성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모든 선교단체는 자신들의 정책이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혼란과 어려움이 조만간에 닥쳐오게 될 것이라고 데니스 레인은 말한 바 있다. 그는, 선교회가 해체되거나 소속 선교사들이 실망하게 되는 한 가지 큰 이유는, 분명한 정책의 부재에 있다고 말한다. 일제하에서 조선장로회 선교사들이 선교지 중국에서 40년 이상 지속성있는 선교를 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한 가지 역시 분명한 선교정책이 있었기 때문임을 보여주고 있다.

본 론
초기 조선장로회 선교사들은 모두 평양에 있는 신학교를 졸업하였고(여선교사 제외), 동일한 신앙고백과 신학적 배경을 지닌 자들로 동일한 지역으로 파송을 받게 되었다. 선교사 선발에 있어서 선교사 후보자의 의사가 존중되는 가운데 총회가 적임자를 선발하였고, 본인이 수락케 되면 선교지로 파송을 하였다.

현지교회(교단)와의 관계

배 경
조선과 중국 등지에서 일하던 선교사들은 모두 백인 선교사들이었고 조선과 중국은 그들의 선교지였다. 1912년 조선장로회 총회가 조직되고 선교사 파송이 거론된 후에 총회전도국은 선교사 한위렴(W. B. Hunt)으로 하여금 선교 가능 지역을 조사토록 하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였다. 한위렴 선교사는 중국을 방문하여 미국선교사 등 중국 교회의 지도자들을 만나, 조선 교회의 선교사 파송문제를 협의, 긍정적인 답을 얻어 귀국, 보고하게 된다. 선교사를 파송하기 전에 선교 가능성을 미리 조사하면서 선교사들과 현지 교회 지도자들의 협조를 구하였던 것이다. 가능성 있는 반응을 얻어 귀국한 한위렴 선교사에 이어, 1913년 선교지 허가를 얻기 위해 2명의 조선인 목사를 파견하게 되는데, 1913년 5월 박태로 목사와 김찬성 목사가 山東으로 건너 가게 된다. 조선장로회 총회에서 일치가결로 山東선교를 결의하기는 하였으나, 피선교지 山東지방 문제에 있어서 中華예수敎長老會 華北大會와 교섭하여 선교지 허가를 얻기 위해서 갔던 것이다. 2명의 조선 목사가 山東을 방문한 때는 마침 3년 만에 1차씩 있는 화북대회 회집 시기이었기 때문에, 조선총회가 파견한 2명의 목사는 조선 교회의 山東선교를 화북대회에 제출하게 되고, 반대의견도 나왔으나 화북대회는 일치가결로 조선 교회가 山東선교하는 것을 허락한다. 당시 조선장로회는 총회를 조직하였으나, 중국장로회는 대회가 최고의 기구였으므로 山東大會의 허락을 구하였던 것이다. 조선장로회는 이상 언급한 것과 같이, 피선교지 교회와 무관한 선교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허락과 협조를 얻은 후에 선교사 파송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조선 선교사들의 소속문제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는 華北大會의 허가를 받은 후 1913년 가을, 세 명의 목사 가정을 山東 萊陽에 파견하였으나, 조선선교사들은 여전히 조선 교회에 그 소속을 두고 있었다. 1915년 가을, 잠시 귀국한 김영훈 목사는 선교사의 소속을 중국노회로 옮기는, 즉 이명문제를 제출하기에 이른다. 중화민국장로회 노회하에서 일을 보려면 이명증서가 있어야 그 곳 노회에도 참석하고, 사역하기에도 편리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장로회 총회는 선교사 이명문제를 류안(留案)하였고 1916년에 중화민국 山東督會(노회:필자 주)에서 선교사를 이명하라는 공함(公函)을 받게 된다.
선교사의 이명문제를 류안하고 있는 조선총회에, 山東老會는 편지를 보내어 선교사가 이명을 하더라도 실제로는 조선총회에 속해 있는 것이고, 이름을 옮기지만 조선총회와 단절된 관계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미국선교사들도 같은 상태로 중국노회에 소속되어 일보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선교사의 소속문제에 있어서 조선장로회 총회는 미국선교사들의 소속방식을 알게 된 후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된다. 즉 이명은 허락하지만 중국 山東에 있을 때에는 중국노회의 회원이 되고, 귀국할 때에는 구잠을 불문하고 조선총회원이 된다는 것이다. 조선선교사들의 소속이 중국노회로 옮겨지기는 하나, 중국에 있을 때는 중국노회원이 되고 조선에 올 때는 조선총회원이 된다는 조건을 첨부한 것이다. 당시 조선선교사들만이 특별하게 이명해 간 것이 아니라, 미국선교사들과 유사한 형태의 이명을 하였던 것이다.1916년 9월, 선교사 이명문제가 가결된 후부터 조선선교사들은 그들의 소속을 중국노회로 이명하게 된다. 그리하여 중국노회원이 되어 함께 활동을 시작하였다. 조선선교사들은 山東老會와 膠東老會員으로, 또는 노회장으로 활동하였고 중국노회에 영향력있는 인물이 되었다. 조선선교사들은 중국노회로 이명을, 하기는 하였으나 조건부로 이명한 것이다. 선교사직을 마치고 귀국할 때에는 조선총회 내 소속노회로 다시 이명을 하였고 중국 내에서는 산東노회에서 膠東노회로 이명하기도 하였다. 조선선교사들은 중국노회로 이명하여 노회일을 같이 보면서, 별도로 조선선교사회를 조직하여 선교사업을 진행하였다. 조선선교사회는 1919년에 조직되었다. 조선선교사회는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로 조직하되, 회장 1인, 서기 1인, 회계 1인을 선정하여 매월 1회 정기회를 개최, 일반사무를 처리하였다. 조선선교사회는 매년 회계보고서 그리고 선교회에서 1년 내 행할 사건과 총계표, 목사와 사모의 개인으로 행할 사건에 대한 보고, 익년도 예산 등을 작성하여 조선장로회 총회에 보고하였다. 조선선교사회의 주요안건들은 조선총회에 보고되었고, 허락을 얻은 후에 중국 측 노회의 허락을 얻어야 할 안건들은 중국노회에 제출, 허락을 받는 절차를 거쳤던 것이다. 조선선교사들이 중국노회로 이명하여 노회원이 되기는 하였으나, 별도로 조선선교사회가 존재하여 선교사업을 진행하였고 중국노회와는 별도로 조선선교회는 하나의 조직으로 인정을 받아 사업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1919년 선교지역 확장과 함께 기존 중국 교회들까지 맡게 되는데 외국선교회와 중국측 노회와 두 곳 대회와 교섭한 결과였다. 미국 선교사들의 관리하에 있던 각 교회가 대표자를 파송하여 조선 목사가 목양하는 것을 환영하는 뜻을 표하기도 하였다. 1921년 11월에 山東, 膠東노회가 南關禮拜堂에서 개최되었다. 북장로미슌회, 膠東노회와 교섭, 허락으로 山東省 卽墨지역이 조선선교회 선교지역으로 편입이 되었다. 조선선교회는 미북장로선교회의 관할지역을 넘겨받기 위하여 미북장로선교회와 膠東노회의 허락을 받는 절차를 거쳐야 했고, 인계받은 시설들을 관리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당시 중국 교회들이 선교회에 예속되어 완전한 자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중국 교회들의 입장에서 보면 관리자가 미국 선교사에서 조선선교사로 변경된 것 뿐이라 하겠다. 1922년 겨울에 膠東노회에서는 오산위 지방을, 山東노회에서는 사와박 지방을 조선선교회 관리하에 두기로 힘써 말함으로 부득이 인수하기도 하였다. 조선선교회는 1933년에 이르러 조선선교회 선교구역으로 한 개의 노회를 조직하게 되는데, 山東大會의 승인으로 1933년 5월에 萊陽區會(노회)를 성립하였다. 조선선교회는 山東省 靑島市 근방에 교회 설립을 위해 靑島 미북장로회 선교당국과 교섭하여 1938년 11월부터 靑島구역을 신설하고 전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조선선교회(조선선교사회)와 山東노회, 膠東노회 그리고 1933년에 성립된 萊陽老會, 미북장로 선교회와 선교사들은 상호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선교사업을 펼쳐 나갔다. 중국 山東주재 미북장로교 선교사들과 조선 주재 서양선교사들이 조선 교회의 중국 山東선교에 직접 관여하여 여러 모로 도움을 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山東 선교지 선정에서부터 선교정책 결정, 선교지 확장 등에 직접 관여를 한 것이다.

중국 山東省 선교정책(조선선교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초대회장이었던 언더우드 선교사는 그의 책 "The Call Of Korea " 서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선교활동의 초기, 거의 그 출발점에서부터 하나님은 섭리로서 일반적으로 독특하다고 말하는 방식을 채택토록 하였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것은 세계 여러 곳의 선교사들이 실제로 채택하고 있던 방식이었다. 단지 독특한 점이 있다면, 이 나라에 있었던 모든 선교사들이 이의없이 이 방식을 채택하였다는 데 있다. "

1890년 6월 중국 山東省에서 선교하던 존 리빙스톤 네비우스(John L. Nevius)의 조선 방문의 결과로 조선 주재 서양선교사들은 선교사역을 위한 주요전략으로 네비우스가 제시한 선교방법을 채택하게 된다. "The Nevius plan for mission work "의 저자 곽안련(Charles Allen Clark) 선교사는 네비우스 정책의 중요한 원리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① 선교사가 개인적으로 널리 순회하며 전도함.
② 사역의 모든 분야에서 성경이 중심이 됨.
③ 자전(自傳): 모든 신자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자가 되며, 동시에 자기보다 나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자가 된다. 모든 개인과 집단(소수 그리스도교인의 모임)은 휘묻이법에 의해 사역을 확장시키려고 노력한다.
④ 자치(自治): 모든 그룹은 선임된 무보수 영수(領首:지도자)의 관할을 받는다. 순회 교구들은 나중에 목사가 될 유급 조사들의 관할을 받는다. 순회 집회시에는 교인들을 훈련시켜 훗날 구역, 지방, 전국의 지도자가 되게 한다.
⑤ 자립(自立): 신자들이 스스로 마련한 예배당을 소유한다. 각 그룹은 창립되자마자 순회 조사의 봉급을 지불하기 시작한다. 학교조차도 부분적인 보조금을 받도록 한다. 이것은 설립될 당시에만 필요하다. 개교회의 목사에게 외국의 자금으로 사례를 지불하지 않는다.
⑥ 모든 신자는 그룹 영수와 순회 조사 아래서 조직적인 성경공부를 한다. 그리고 모든 영수와 조사는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조직적으로 성경을 공부한다.
⑦ 성경적 형벌을 통해 엄격한 징계를 실시한다.
⑧ 다른 선교단체와 협력하고 연합한다. 아니면 최소한 영역이라도 분리한다.

이하 생략/김교철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6,198건 613 페이지
선교편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78 지역사역국 1652 05-10
77 지역사역국 1711 05-07
76 지역사역국 1796 05-06
75 지역사역국 1953 05-04
74 지역사역국 1739 05-03
73 지역사역국 1882 05-03
72 지역사역국 1692 05-03
71 지역사역국 1746 05-03
70 지역사역국 1393 05-03
69 지역사역국 1646 05-03

검색


GMS(총회세계선교회) - Global Mission Society
주   소 : (18577)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월문길 11-10 | 대표자 : 김정훈 | 비영리법인 고유번호 : 124-82-13525
연락처 : T. 031-354-8861 | F. 031-354-8862 | E. gmshq@gms.kr
COPYRIGHT © 2020 GMS ALL RIGHT RESERVED.